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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의 ‘잃어버린 시간’ 찾아 떠나는 하루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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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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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보존과 복원 필요한 5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안료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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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 〈검은 나나(라라)〉(1967)와 보존에 활용되는 도구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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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둘러싼 세가지 의견을 우종덕 작가가 동명 제목의 작품으로 풀어낸 우종덕의 The More the Better (다다익선),2020.[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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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테라코타 ‘여인좌상’ 과학분석.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자 주인공 준세이의 직업은 유화 복원사다. 그는 “복원사는 죽어가기 시작한 생명을 되살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주인공의 자아를 반영한 직업이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400년 전 사라진 그림을 복원하는 신의 손 ‘이강준’이 나온다. 무엇이든 베껴내는 그는 안견의 ‘벽안도’에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이 그림은 미술계 큰 손들이 관여하는 거대한 사기극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보존과학자는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 대상이다. 이러한 보존과학자의 하루를 돌아보며 그들의 역할, 미술품 복원의 과정, 복원 과정의 원칙 등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이하 청주관)은 상반기 기획전 ‘보존과학자 C의 하루’를 개최한다.

 

부주의에 의한 파손, 고의적 파손, 시간에 따른 열화 등 작품도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리고 미술관은 이러한 작품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리하고 전시하기 위해 ‘보존·복원’을 진행한다. 보존과 복원은 미술관 내 직원들 사이에서도 대외비에 가까운 비밀스러운 파트다.

 

전시는 가상의 인물인 보존과학자 C의 하루를 따라간다. 그는 똑똑하고 명석하며 날카로운 판단력과 직관을 바탕으로 죽음에 처한 작품들을 살려낸다. 여성화가 이갑경(1914-미상)의 ‘격자무늬 옷을 입은 여인’은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이었지만, 그가 받아든 작품은 캔버스가 없이 둥글게 말려있었다. 일부 천은 찢어지고 물감은 떨어진 심각한 상황이었다. 두 번의 복원 처리를 통해 완벽하게 옛 모습을 되찾는 과정은 마법처럼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오지호의 ‘풍경’은 나무와 수풀이 있는 풍경화이나, X선 촬영을 통해 그 속에 여인의 전신상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고,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 ‘여인좌상’은 과학분석을 통해 두 작품이 동일한 주형 방법과 유사한 소성조건으로 제작된 에디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야외정원에 3년간 전시됐던 니키 드 생팔(1930-2002)의 ‘검은 나나’는 도장이 벗겨지고 변색되는 등 전체 재도장 보존처리가 필요했다. 미술관은 니키 드 생팔 재단과 지속적 협의를 거쳐 보존 처리 방향과 방법론, 재료를 결정했다. 이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의 복원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자의 의도’라는 원칙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신미경 작가의 ‘비너스’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비누로 만든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아 없어지는 조각작품이지만, 작가는 비누작업을 보존하기 위해 바니시로 마감했다. 미술관도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 보존 방법을 바꿨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이 당면한 가장 큰 보존·복원 이슈는 바로 과천관에 자리한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다.

 

우종덕 작가는 이 ‘다다익선’을 소재로 보존과학자 C의 입을 빌어 첨예한 복원 이슈를 제시한다. 3명의 C는 각각 ‘브라운관 원형 유지’, ‘백남준의 유지에 따라 신기술 적용’, ‘서서히 소멸해가도록 내버려 두거나 해체’를 주장하며 충돌한다. 전시장을 나오면 관객의 의견을 묻는 설문도 한다.

 

모순적인건, 전시 내내 현대미술작품의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신기술을 적용하고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원복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앞서 미술관은 2018년 2월부터 기기 노후화와 누전위험으로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지난해 9월 발표했다. 기존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원본성을 유지하고, 일부분에는 LED로 대체하는 등 보존, 복원을 추진, 2022년엔 전시를 재개할 예정이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최근 코로나19의 지역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은 방역조치를 강화, 공공다중이용시설이 한시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청주관은 이에 해당하지 않아 예약을 통해 바로 관람할 수 있다.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전시관람이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채널(youtube.com/mmcakorea)에서 7월 2일 오후 4시부터 30분간 담당학예사의 설명과 함께 중계된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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