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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 한국판, 디자인이 일려주는 정체성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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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플레이보이 한국판, 디자인이 일려주는 정체성

By 양진이 (스토리텔러)

1953년 창간한 미국의 플레이보이 매거진. 한번도 실물을 본 적은 없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일 것이다. ‘플레이보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화제의 중심에 있나 단어사전을 몰래 검색해본 경험,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토끼로고와 야릇한 감성까지. 우리가 외신 대표 언론사의 이름과 잡지이름은 잘 모를지라도 플레이보이만큼은 무의식 중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영향력만큼이나 개성 있는 이 잡지가 보수적이고, 젠더 감수성이 한참 민감(예민)한 한국에 2017년 9월 창간을 했다. 전세계에서 23번째로, 공교롭게도 창업자 휴 헤프너가 사망한 전후로. 플레이보이의 이념과 노선, 컨셉과 한국 현지화(?)의 구상은 어떻게 디자인되었는가? ‘한량, 바람둥이’ 라는 타이틀, 남성용 누드 잡지로만 한정 짓기에는 읽을거리도, 눈요기거리도 너무나 많다. 

1. 바니걸과 토끼로고
007본드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는 바니 걸. 플레이보이 로고와 함께 항상 등장하는 미녀들은토끼 귀 장식에 글래머러스 한 몸매가 드러나는 바디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검은 턱시도가 연상되는 디테일과 망사 스타킹,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포즈. 똑같이 ‘벗은’ 의상이지만 플레이보이의 표지모델인 ‘플레이 메이트’ 들은 이미지는 우아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매력적이길 바라는 휴 헤프너와 플레이보이지의 철학을 대변한다. 토끼의 쫑긋한 귀는 호기심을 상징하며 리본 넥타이는 단순히 누드사진만 보는 저급한 독자가 아닌 최고의 칼럼니스트와 작가들의 글을 읽는 지적인 독자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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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역대 플레이보이 모델 케이트 모스 / 아트 폴(Art(Arthur)Paul)이 디자인한 플레이보이 로고

플레이보이의 아이콘은 역사상 최고의 로고 중 하나로 꼽히며 휴 헤프너에 의해 발탁된 후 30년간 아트디렉터로 활동한 아트 폴(Arthur Paul)이 창조하였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는 없다고 믿었던 새로움을 향한 실험 정신을 강조한 디자이너- 단순한 외설적인 누드사진을 싣는 성인잡지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 모든 세계관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한 디자인에는 뚜렷한 신념과 정체성이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2. 누드가 전부는 아니다
휴 헤프너 사망 이후 재평가된 그의 철학은 당시 고착화된 성 관념, 흑인과 LGBT의 인식과 인권문제, 여성의 성해방 등 당시에는 파격적인 양성평등의 신념을 문화적으로 시도했다. 플레이보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육감적인 누드 모델뿐만이 아니다. 휴 헤프너는 오래 전부터 여성의 권리신장을 언론이라는 매체를 적극 이용해서 지지했다. 잡지 칼럼을 통해 여성필자들이 직접 글을 쓰고, 피임약 복용과 낙태자유권 지지 등 오늘날에도 뜨거운 논란의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슈화 하였다. 1990년 트럼프가 표지모델로 등장했고, 젊은 트럼프와 긴밀히 나눈 인터뷰에서는 그의 경영철학, 외교,정치를 비롯해 그의 사생활이 사세히 드러난다고 한다. 실제로 정상회담을 앞두고 메르켈과 문재인 대통령도 이 인터뷰를 참고 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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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트럼프가 플레이보이표지 모델 / 64년 역사상 처음으로 센터가 된 트렌스젠더 모델

앞서 소개된 바와 같이 ‘플레이 메이트’라는 소위 센터 모델을 매달 선정을 한다. 잡지 중간에 거대한 컬러 화보로 등장하는 플레이 메이트는, 64년만에 처음으로 트렌스젠더 모델이 선정되었다. 생물학적 성별과 여성성이라는 경계, 아름다운 몸에 대한인식, 외설과 예술의 경계가 전부 모호해지는 시대의 단면을 육감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사회적 누드인 셈이다.

3. 글로 디자인하는 콘텐츠의 깊이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플레이보이의 디자인적, 미적, 예술적 가치만을 논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2017년, 문화의 홍수와 사회적 과도기에 휩싸인 한국 컨탠츠 시장에 플레이보이 코리아가 창간을 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첫 표지 장식은 까만 토끼, 메인 테마는 ‘서울 여자’로, 사람들의 기대와 선입견은 제각각 이었다. 서울여자들이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짐작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서울이라는 아이콘이 갖는 의미, 서울로 상경한 ‘여자’들이 갖는 시대적 의미는 미싱을 돌리는 여공에서부터 82년생 김지영, 강남역 살인사건의 모든 여성들을 하나의 맥으로 이어주는 듯하다. 물론 누드사진도 실려있다. 다만 얼마나 야한지 시시한지 대결하려는 선정적인 미끼가 아니라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플레이보이 코리아의 세계관과 신념을 공고히 하는 수준에서 신중하게 디자인된 구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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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플레이보이 코리아 창간호 표지 / 플레이보이 11월호 플레이 메이트 

플레이보이잡지가 갖는 선입견과 본 의도와는 다르게 소비되는 ‘벗은 한국 여자들’의 사진들. 아직 3호 밖에 되지 않았지만 개척해 가야 할 길도, 정립해 나가야할 컨셉도 많지만 오리지널 플레이보이의 정신과 한국 현지화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기대가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플레이보이 잡지를 정독하는 나의 모습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플레이보이 맨션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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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트렌드#디자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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