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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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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는 굴다리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의 그래피티가 눈에 띄었는데, 멋모를 때라 그런지 신기했다. 놀라운 것은 일주일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그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미술관에서 보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볼 때마다 색다른 기분이 들고, 어떠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일종의 낙서라고 말씀하셨지만, 필자에게는 또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래피티(Graffiti Art)란 건물 벽면, 교각 등 야외 건축물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뉴욕 슬럼지역의 빈민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낙서에서 시작됐다.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인 사이 톰블리(Cy Twombly)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가 그림과 낙서, 드로잉을 결합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선보였다. 뒤이어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가 그래피티 예술가를 포함한 아웃사이더들의 미술인 '아르 브뤼(Art Brut)'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진 출처=john CRASH matos 공식 홈페이지>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 서명을 남기는 방식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동시에 뉴욕 거리에 낙서화가 많아졌다. 초창기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도했다. 선명한 색감의 분무 페인트를 사용하여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격렬한 문자들을 그려냈다. 주배경은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등이었다.


<사진 출처=(좌) Keith Harring Foundation, (우) ADAGP Banque d'Image>

그래피티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다. 바스키아는 미국의 낙서화가로 무언가 어설픈 듯한 그림에 인종주의, 해부학, 흑인영웅, 자전적 이야기, 죽음 등 심오한 주제를 담아냈다. 그는 길거리의 골칫거리였던 낙서를 예술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스 해링(Keith Harring)은 기호화된 사물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유명했다. 검은 종이에 하얀 분필로 빠르게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을 대중 가까이로 끌어들였다.

세상에 수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집중적으로 알아볼 작가는 존원이다. 지난 9월 3일까지 진행되었던 <위대한 낙서 - The Great Graffiti> 展에서 만난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그래피티가 생소한 관람객, 아니 미술과 친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규모와 색감에 자연스럽게 압도당한다.


<사진 출처=존원 공식 인스타그램>

존원은 1963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그래피티 아티스트이다. 현재는 파리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2015년에는 프랑스의 최고 권위의 명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문화/에술 부문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그래피티를 접했고, 뉴욕의 초기 스트리트 아트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도시의 벽, 지하철을 캔버스 삼아 그래피티를 그려나갔다. 이후 아티스트 Bando를 만나 파리로 이주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1993년에 거대한 캔버스에 그린 작품 ‘Match Point'는 2007년 프랑스 내에서 경매된 그래피티 아트 중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존원은 단순한 그래피티 아트씬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사진 출처=LG전자 공식 홈페이지>

그는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 음료 브랜드 페리에 등과 협업했다. 그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대표적인 국내 기업은 LG전자이다. 2016년 LG전자는 포터블 스피커, 노트북, 모니터, 포켓포토 등 IT 제품에 존원의 그래피티를 적용한 ‘존원 아트시리즈’를 총 3가지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지하철의 낙서, 길거리 농구, 힙합 등 뉴욕 거리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한 ‘마스터 블라스터(Master blaster)’,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표현한 컬러 웨이브‘(Color waves)’, 공연장의 화려한 조명, 비트, 퍼포먼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표현한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등이다. 그래피티 작품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슬라이드 기법을 사용했다. 도료를 필름으로 덮어 물감의 질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선명한 색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존원 공식 홈페이지>

존원의 본명은 존 페렐로이다. 존원(JONONE)이라는 예명을 지은 이유는 존(JON)이라는 흔하디흔한 이름을 가진 자신이 도시 속에서 유일무이한 존재(ONE)가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태그(Tag)'를 기반으로 한다. 태그란 휘갈겨진 사인과 유사한 개념이다. 문자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캘리그라피, 서예와 비슷하다. 그의 예명은 이러한 태그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규칙 없이 반복되는 알파벳은 외계 문자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추상화처럼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출처=존원 공식 홈페이지>

그래피티 작업은 원래 불법이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도록 빠르게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단시간 내에 커다란 공간을 조화로운 색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자유분방하면서 즉흥적인 감성,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 든다.

한 인터뷰 영상에서 존원은 그래피티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너 도대체 뭘 그리고 있는 거야? 그건 그래피티가 아니야. 그래피티는 네 이름을 쓰는 것처럼 전통적인 그래피티의 느낌이 나야 해.’ 그들이 생각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전체적인 흐름과 움직임을 그리는 것에 순수한 흥미를 느끼고, 저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릴 뿐입니다.…저는 항상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과 같은 아티스트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그림에 투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의 작품을 보면 붓과 캔버스 사이에 어떠한 공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또한 이들처럼 사람들이 제 작품을 바라봤을 때, 붓칠 뒤에 숨어있는 어떤 힘을 느끼길 원합니다.”

존원은 마지막으로 항상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굳은 결심을 말했다. 존원과 같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덕분에 그래피티는 낙서에서 예술로 인정받게 되었고, 새로운 장르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발전을 거듭해나갈 전 세계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더 많은 전시회에서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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