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op

news
home NEWS ART
ART
나의 ‘에코르셰’를 사랑할 것
2017.03.27
edit article
헤럴드디자인

나의 ‘에코르셰’를 사랑할 것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파리의 이단아’로 불린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를 아는가? 필자는 작년 여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를 처음 만났다. 당시 함께 전시되었던 마르크 샤갈과 살바도르 달리의 화려하고 몽환적인 작품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날카로운 직선과 무채색이 주를 이룬 그림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은 우중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딱딱한 건축물 안과 밖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인물화에서 퀭한 눈으로 뻣뻣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피사체는 감정이 없어 보였다.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혼자밖에 남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t1.jpg

Monfort l'Amaury, 1977

<사진 출처=ART WORKS PARIS SEOUL>

그림2.jpg

Femme au verre de vin, 1955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화가리정의 예술세계’>

 

t3.jpg

 Clown à la cravatte à Pois, 1978

<사진 출처=아트인사이트 기사 ‘내가 사랑하는 화가, 베르나르 뷔페’>

베르나르 뷔페는 1928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며 자라났다. 어린 시절부터 마주한 전쟁과 어두운 사회는 그의 일생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뷔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안과 고독을 읽어냈다.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 시대를 직시해야 한다.”라는 신념 아래 절제된 구도와 금욕적인 분위기로 그림을 그렸다. 미술이 세상을 즐겁게 해야 하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기를 든 것이다. 

t4.jpg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화가리정의 예술세계’>

뷔페는 독특한 화풍으로 19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게 되었다. 프랑수아즈 사강, 로제 바딤, 이브 생 로랑,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5명의 젊은이로 선정되었고, 30대 초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1971년에는 프랑스 문화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으며 거장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냉철한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뷔페는 자신의 신념을 평생 동안 그림에 담아냈다.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확인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불안과 고독으로 점철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속에서는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듯이 밝은 얼굴을 하고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실컷 수다를 떨고 혼자가 될 무렵, 공허함이 몰려온다.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삶은 뷔페의 표현을 빌리자면 ‘쓸데없는 화장’으로 가득한 삶이다. 이렇게 큰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고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러내기 부끄럽다고 생각하며 눈길을 거둔다.

뷔페는 <에코르셰> 연작을 통해 다시 한번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에코르셰’란 인체나 동물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해 근육이 노출된 상태를 그린 드로잉을 말한다. <에코르셰> 속 인물 역시 피부가 벗겨져서 붉은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를 세게 물은 채 정면으로 우직하게 서 있는 모습이 전혀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온전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나보다도 더 강렬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t5.jpg

 Les Ecorches, Ecorche de face, 1964

<사진 출처=아트인사이트 기사 ‘내가 사랑하는 화가, 베르나르 뷔페’>

화려한 행보를 선보였던 뷔페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매번 비슷한 소재를 이용하고, 예술을 통해 지나친 부를 축적한다는 이유로 대중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예술에 대한 의지가 꺾일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뷔페는 굴하지 않았다. 이때 탄생한 <에코르셰> 연작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자신의 처지가 초라한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직시했다. 그리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뷔페는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파킨슨병으로 손을 쓸 수 없게 되기까지 8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림8.png

 베르나르 뷔페 말년의 작품

(좌) Tempête en Bretagne, 1999 (우) Saules près de l'étang, 1990

<사진 출처=구글> 

쓸데없는 화장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치부를 인정할 때, 그 어떤 비난에도 견뎌낼 힘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내 길을 걸을 수 있다. 거울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뷔페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나와 당신의 ‘에코르셰’도 자주 보면 어느새 정이 들지 않을까. 그 가운데에서 한층 강해질 모습을 기대해본다.

keyword
#헤럴드 #헤럴드디자인 #디자인트렌드 #베르나르뷔페 #파리의이단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
share
LIST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