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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당 1억5000만원...‘77년된 집’의 가치 [디자인 플러스-압구정 로데오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L993’]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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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프랑스 건축가 푸르베가 제작한 ‘임시주택’

철근·목재로만 쓰여져 조립·해체 쉽게 설계

 

일상속 소박한 디자인...심플체어·책상 눈길

페리앙의 책선반 ‘구름’·잔느레 ‘오피스체어’

모더니즘 거장 코르뷔지에 ‘LC체어 시리즈’

20세기 디자이너 4인의 작품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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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푸르베의 난민을 위한 임시주택. 프랑스 정부의 커미션을 받아 쉽게 짓고 해체하고 이동할 수 있는 ‘해체 할 수 있는 집’을 1944년 고안했다. 철골로 구조를 잡고, 목재로 끼워 맞추는 형태다. 세 명이 하루면 지을 수 있다. 36㎡인 이 집의 현재 거래 가격은 약 150만달러다. [갤러리L.993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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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푸르베의 스탠다드 체어. 뒷 쪽에 하중이 더 실리는 것을 감안해 좀 더 두꺼운 철제 다리 형태가 만들어 졌다.[갤러리L.993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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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샬롯 페리앙의 Porte-manteau [갤러리L.993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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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잔느레의 도서관 책장과 오피스 체어(얼리 에디션)[갤러리L.993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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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페리앙 구름 책선반(Nuage Bookshelf). 일본 협소 주택에서 봤던 벽걸이형 수납장을 재해석했다.[갤러리L.993 제공]

가로 6m, 세로 6m. 정확하게 정방형인 이 집의 현재 거래가격은 약 150만 달러(16억9000만원). 대략 10.89평이니 평당 1억5000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 주요지역 아파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려 77년된 임시주택의 가격이다. 프랑스 유명 건축가이자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장 푸르베(1901~1984)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하던 1944년부터 1945년 사이, 프랑스 정부가 폭격으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제작을 요청한 임시 주택 프로젝트 ‘해체 할 수 있는 집(Demountable House)’이다. 당시 약 400여채를 제작했고, 현재 150여채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난민들을 위한 임시주택 답게 이 집은 세 사람이 하루면 지을 수 있다. 가구부터 집까지 모든 것을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푸르베의 신념을 담아 운반과 조립, 해체가 용이하게 설계됐다. 건축에 사용된 재료는 철근과 목재가 전부다. 철근으로 뼈대를 잡고 목재가 붙는 형태다. 저렴한 재료로 쉽게 짓고 버릴 수 있게 제작됐기 때문에, 장기적 보존은 처음부터 목표가 아니었다. 이제는 전문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값비싼 몸이 됐다. 건축가의 철학과 사상, 아이디어가 시간과 만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덧입혀진 것이다.

 

 

장 푸르베의 의도와 달리 귀한 몸이 되어버린 ‘해체 할 수 있는 집’은 현재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헨리 베글린의 압구정 로데오 플래그십스토어 지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헨리 베글린을 전개하는 한국 최초의 멀티숍 ‘L.993’(구, Li Berty)가 복합 문화공간 ‘갤러리 L.993’을 개관하고, 지난 11일부터 한 달 간 ‘장 푸르베 : 더 하우스 | 샬롯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전을 개최한다. 전시엔 장 푸르베와 동시대를 점유하며 ‘디자인’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 꿨던 세 명의 디자이너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프루베는 사회 속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조형미를 갖추면서도 사회적 기능을 가진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다. 학교나 병원 등 지역사회와 관련한 작품이 많다. 특별한 공간이 아닌 일상 속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전시장에도 있는 ‘스탠다드 체어(Standard Chair - red)’는 금속과 목재로 이뤄진 심플한 형태의 의자다. 하중을 지지하는 곳은 철제로, 인간의 몸이 닿는 부분은 나무로 제작했다. 철제로 이뤄진 소문자 ‘h’ 형태의 프레임은 견고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형태다. 대학교용으로 설계돼, ‘스쿨 체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의자와 함께 세트인 ‘시테(Cite)’ 책상도 굉장히 기능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알루미늄과 오크로 이뤄진 옷장도 푸르베의 디자인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전시장에 나온 시테 책상과 옷장은 실제 장 푸르베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딸인 프랑소와 거티어가 소장하던 것으로, 경매에 나온 것을 L.993에서 낙찰받았다.

 

 

전시장 벽 한켠엔 샬롯 페리앙(1903~1999)의 책선반 ‘구름(Nuage)’이 걸렸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대 유명 디자이너 사이에서 주목 받았던 그가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 지원했을 때, ‘이곳에서는 쿠션에 수를 놓지 않는다’며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1927년 르 코르뷔지에는 살롱 드 오토메 전시에 페리앙이 출품한 작품을 보고 뒤늦게 채용한다. 이후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많은 협업 작품을 남겼다.

 

구름 선반은 페리앙이 50년대 후반, 남편과 함께 머물렀던 일본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며 스테프 시몽 갤러리와 장 프루베 아틀리에와의 협력으로 제작된 시리즈 중 하나다. 페리앙은 일본 협소주택에서 봤던 벽걸이형 수납장을 자신의 디자인으로 재해석 했다. 다양한 색상의 산화 알루미늄을 이용해 매력적인 개성을 더하고, 수납장으로, 양면 또는 벽면에 거치된 책장으로 등 여러 환경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갖춘 작업이다.

 

피에르 잔느레(1896~1967)는 공공적이고 진보적인 건축철학을 추구한 건축가이자, 미니멀리즘 가구 디자인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사촌 르 코르뷔지에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아이디어를 디자인으로 실제 구현하는 건축 엔지니어로 활동했으며, 인도 찬디가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두 사람의 대표적 공동 프로젝트로 꼽힌다. 잔느레는 15년간 찬디가르에 상주하며 도시계획 디자이너로 현장을 총괄 했다. 이때 잔느레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찬디가르 퍼니처’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특히 ‘오피스 체어’는 덥고 습한 인도 지방의 기후적 특성을 고려해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케인을 소재로 통풍이 잘 되도록 만들어진 의자다.

 

대표적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현재까지도 가장 영향력있는 건축가이자 화가, 디자이너로 평가 받는다. 1920년대 초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파리에 건축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이후 샬롯 페리앙을 영입하여 건축물의 내부를 구성할 가구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샬롯 페리앙이 1984년 진행했던 아트리뷰 인터뷰에 따르면 “르 코르뷔지에가 항상 사물의 ‘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이) 앉는 다양한 방법과 그에 따라 어떤 종류의 의자가 필요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탄생한 가구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이니셜을 따 ‘LC 시리즈’로 불린다. 금속관의 프레임에 두툼한 쿠션을 올린 깔끔한 LC 체어 시리즈는 미드 센츄리 모던을 대표하는 의자로 꼽힌다. 전시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샬롯 페리앙이 함께 제작한 ‘코트 랙’이 전시된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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