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계절을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
< (좌)도자 반상기 출처=이화여대 박물관 도록 <상차림의 미학> (우)유기 반상기, 출처 = 방짜유기박물관, 공유마당 >
한국과 일본은 닮은 듯, 다른 나라입니다. 뚜렷한 사계절로 음식문화가 발달했고, 그릇이 발달했는데, 일본이 계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면, 우리나라는 그릇의 모양을 그대로 둔 채 기능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재질의 변화라는 계절감을 즐겼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유기는 조선시대에 매우 비싼, 도자기의 거의 3배의 가격이라 어느 집이나 마련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 비싼 그릇을 주로 온기가 사라진 계절에 사용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아직 좀 더 연구가 필요하네요.
한동안 우리의 밥상에서는 유기가 거의 사라졌지요. 바로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말에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필요한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유기를 공출하였기 때문이랍니다. 역사시간에 ‘일본이 전쟁을 위해 유기그릇을 빼앗아 갔다.’ ‘제기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몰래 숨겼다.’ 라고 문자로 기록되고, 언어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리의 일상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고, 이젠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식문화를 가졌다는 것조차 기억하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실상을 금속헌납, 유기헌납이라는 이름으로 촬영된 기념사진으로 가름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을에서, 한 학교에서 걷은 유기의 양이 보통 이 정도이니 전국단위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기를 걷어 일제강점기 중 가장 많은 자원유출이 이때 유기로 걷어간 거라고 합니다.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쟁에 사용할 금속 공출을 독려하기 위해 ‘헌납’이라는 미명을 씌워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중적 폭력성에 말문이 막힙니다.
< 사진출처 = 부평역사박물관 소장품 >
전쟁의 시간이 지나고, 식민지 시기가 끝났어도 우리의 밥상으로 유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유기가 다시 그릇의 재료로 관심을 받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유기는 무게나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사라졌던 그릇이니까요. 오랜 시절 한국인이 사랑했던 유기가 오늘날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잘 사용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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